1991년 처음으로 한국에 도입된 '섀도 보팅(Shadow Voting)'제도가 2017년 말 폐지됐다. 섀도 보팅제 폐지는 도입 이후 소수 경영진이나 대주주의 경영권 강화 수단 및 주주총회의 형식화로 전락해 버리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정부의 방어책으로 제시됐다. 2013년 조항 삭제 이후 유예되었던 섀도 보팅 폐지가 작년 말 예정대로 진행이 되면서 재계에서는 의결정족수 확보 어려움으로 인해 경영의 합리적 진행이 어려울 수 있으니 주총 결의요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섀도 보팅 제도란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의 수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예탁결제원에 맡겨진 주주들의 주권에 대해 의결권 대리 행사를 하는 제도로 예탁결제원의 의사는 주주총회에 참석한 주주들의 의사 결정과 동일한 비율을 따른다는 제도다. 이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로 1991년 도입 이래 섀도 보팅을 신청하는 상장사는 해마다 증가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09년 510개사, 2010년 540개사, 2011년 574개사 였으며, 2013년 섀도 보팅 조항이 삭제가 되면서 2014년 312개사(17.8%)로 줄었으나, 2015년 455개사(24.4%), 2016년 641개사(33.3%)로 다시 증가했다.
섀도 보팅은 주주총회를 형식화하고 소수주주의 의견이 반영돼 다수의 소액 주주들의 의견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배경으로 인해 폐지됐지만, 다수의 상장사들이 이미 폐지된 섀도 보팅제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이유는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주총이 무산될 것을 염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에 의하면 주주총회 의결정족수는 일반결의와 특별결의로 나눌 수 있으며, 일반결의 중에서 감사 선임 내용은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는 소액주주의 비율이 높은 기업에는 불리한 규정으로 의결정족수 25% 중 대주주의 의결권 3%를 제외하고 남은 23%의 정족수를 기업들은 소액주주들을 독려하여 주총에 참석시켜야 한다.
한국상장협회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들이 의결정족수를 만족시키기 어려운 더 큰 이유는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여율이 1.88%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1989년 코스피가 1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 소액 주주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이들 소액주주는 투자로 인한 수익에만 관심이 있을 뿐 주총 참석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 임원은 인터뷰를 통해 유가증권 시장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7.3개월, 코스닥 시장의 평균 주식 보유 기간은 3.1개월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는 소액주주들의 주총 참석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소액주주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의결정족수 미달로 인해 감사위원회 구성을 못할 경우 원칙적으로 해당 상장사는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상장폐지로 진행되는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섀도 보팅 폐지로 인해 의결정족수를 만족하지 못해 주총에서 감사 선임에 어려움을 겪을 상장사는 2018년에 93개사, 2019년에 199개사, 그리고 2020년에는 224개사가 될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정부의 가이드 라인에 따르면 정족수 미달로 주총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상장사는 전자투표제도를 의무적으로 도입하거나, 주총 공시 전까지 주총을 성립시키기 위해 노력한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우 주총 무산 우려로 인한 전자투표제 도입은 관리 비용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1~2인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해외의 의결정족수 규정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와 달리 의결정족수가 주주총회 진행에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우리나라는 발행주식총수의 1/4 이상인 것에 반해, 중국은 규정이 없고, 독일의 경우는 회사가 원할 경우 스스로 의사정족수를 정할 수 있으며, 영국은 2인 이상, 프랑스는 최초 소집 시 1/5 이상(1회 무산으로 재소집 시에는 의사 정족수 없음), 일본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과반수이나 정관으로 삭제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도 의결권이 있는 주식의 과반수이나, 정관으로 1/3까지 낮출 수 있다.
섀도 보팅 폐지를 통해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을 막고 주주참여를 독려하는 등 순기능이 있으나, 현실적으로 소액주주 참여율이 미미한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제도개선이나 폐지를 집행하며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유연하게 기술적 보완책을 만들어야 진행이 매끄럽고 생산적인 경우가 많다. 주주의 권리 도약 측면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방침인 것은 분명하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제도 폐지로 인한 부작용을 파악하고 의미 있는 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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